많은 양육서적과 부모교육 관련 교양프로그램은 공감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공감은 부모교육이나 상담 장면에서도 빠질 수 없는 단어다. 공감의 사전적 뜻은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이다. 사전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공감의 필수조건은 경청이 될 것이다. 상대방의 감정, 의견, 주장 등에 온 정신과 마음을 집중하여 경청해야 ’그럴 수 있구나, 내가 저 사람이었어도 저렇게 느꼈겠다, 내가 우리 아이였더라도 충분히 화가 났겠구나, 억울했겠다‘가 가능해진다.
공감의 구체적인 예와 기술들은 많은 책과 tv, 동영상 등에서 제공하고 있다. 이런 정보들을 토대로 부모들은 말한다. “공감 중요한 것 알지요, 책에서 공감하라는 대로 했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생략된 말은 ‘... 공감해줬지만 기대한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어요‘일지 모른다. 혹자는 “어느 정도 공감을 해주고 있어요. 아이 마음에 귀 기울여 주기위해 노력해요”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상담 장면에서 아이들과 소통하다보면, ‘엄마는 나의 마음을 이해해줘요, 엄마는 내 마음을 알아줘요. 엄마랑은 얘기가 통해요. 엄마랑 같이 얘기하는 것이 좋아요’라고 표현할 만큼의 효과적인 공감을 제공하는 부모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는 공감, 반영적 경청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이입장에서 공감받았다고 느낄 수 있게 하려면 부모에게는 어떤 마음이 필요할까?
오늘은 <수용해주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밥 먹기전에 과자먹으면 안된다고 해서 화가 났구나~”, “파자마파티 못하니까 속상해~” 라는 언어적인 표현만으로 아이들은 공감 받았다고 느끼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공감하는 이의 마음, 즉 수용해주는 마음이다. 언어 표현 자체는 “~해서 화가 났었구나, ~해서 실망했구나”라고 반영해주더라도 마음속으로는 ’에휴, 또 저러는구나. 우리 아이는 왜 이렇게 만족을 모를까? 역시 예민해’등의 생각을 한다면 아이는 더 심하게 짜증을 낼 수도 있다. 공감을 해준다고 했는데 아이가 더 심하게 짜증을 낸다면 혹 공감의 흉내만 낸 것은 아닌지, 혹은 무엇 때문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자녀의 모든 반응을 수용해줄 수는 없다. 사회적 존재로 살기위해서는 감정을 조절하고 적절히 표현하는 것을 배워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가 수용에 대해 말하는 부분은 자녀의 감정과 욕구의 측면이다. 감정과 욕구는 우리 안에서 일차적으로 자연스럽게 경험되어지는 부분이므로 그 자체로는 수용받기에 마땅하다. 감정과 욕구는 행동과 달리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나이가 어릴수록, 감정의 분화가 덜 되어있을수록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표현/표출함에 있어 세련되지 못할 수 있다. 아이는 화가 난다고 짜증을 내고 부모에게 무례하게 반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부모는 눈에 드러나지않는 아이의 감정과 욕구보다 겉으로 드러난 표현방식 자체에 반응하기가 쉽다. 공감을 해줘야지라고 결심했어도 그 순간에는 “아무리 화가 나도 엄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라고 반응하기가 쉬운 것이다. 아이의 표현방식이면의 감정과 욕구에 귀기울이는 연습을 하지 못하면 아이의 표현방식자체에 반응하다가 끝이 안 좋게 끝날 가능성이 높다.
사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감정과 욕구에도 잘 귀기울여주지 못한다. 자신이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지만 정말 화가 나서 화를 내는 것인지, 불안과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서, 또는 억눌렀던 좌절감과 우울감이 화로 표출되는 것인지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어떤 부모는 인식은 하지만 자신의 감정과 정서들을 수용해주지 못할 수도 있다. 부모가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과 정서를 수용해주지 못한다면, 자녀의 부정적인 감정과 정서를 수용해줄 수 없다. 자녀에 대해 “you're ok'"를 해주기위해서는 부모자신의 마음속에 ”i'm ok"가 있어야한다. 만약 자녀에 대해 못마땅한 마음, 염려되는 마음이 항상 있어서 ‘괜찮아’라고 충분히 수용해주지 못한다면 부모 자신에 대해서도 같은 마음일 수 있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수용, 'I'm ok'가 되지 않는다면 결코 자녀에 대한 수용, ‘You're ok'가 온전히 이루어질 수 없음을 기억해야한다.
그래서 공감, 수용해주는 마음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모교육을 몇차례 듣고 온다고 해서 책과 동영상을 몇차례 본다고 해서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자신의 성장과정 안에서 이러한 수용과 공감을 받아왔던 사람이라면 예외겠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했던 부모님 세대로부터 이러한 공감과 수용을 받으며 자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수용해주는 마음으로 공감을 해주려면 이를 위한 실질적인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다. 첫째는, 부모가 부모자신의 감정에 귀를 기울이는 연습, 그리고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인정/수용해주는 연습(스스로에게 'I'm ok'라고 말해주는 연습)이 수반되어야한다. 둘째는, 아이의 미숙하고 부적응적인 표현방식 자체에 반응하기보다 그 이면의 감정과 욕구에 귀기울이고 수용해주는 연습(자녀에게 'you're ok'라고 말해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러한 연습과 노력들이 계속된다면 “엄마, 나는 엄마랑 얘기하는 것이 좋아. 엄마는 내 마음을 알아주니까. 난 엄마랑 얘기하면 마음이 편안해져”라는 고백을 듣게 되거나 아이를 양육하고 함께함이 더 행복하고 수월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많은 양육서적과 부모교육 관련 교양프로그램은 공감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공감은 부모교육이나 상담 장면에서도 빠질 수 없는 단어다. 공감의 사전적 뜻은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이다. 사전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공감의 필수조건은 경청이 될 것이다. 상대방의 감정, 의견, 주장 등에 온 정신과 마음을 집중하여 경청해야 ’그럴 수 있구나, 내가 저 사람이었어도 저렇게 느꼈겠다, 내가 우리 아이였더라도 충분히 화가 났겠구나, 억울했겠다‘가 가능해진다.
공감의 구체적인 예와 기술들은 많은 책과 tv, 동영상 등에서 제공하고 있다. 이런 정보들을 토대로 부모들은 말한다. “공감 중요한 것 알지요, 책에서 공감하라는 대로 했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생략된 말은 ‘... 공감해줬지만 기대한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어요‘일지 모른다. 혹자는 “어느 정도 공감을 해주고 있어요. 아이 마음에 귀 기울여 주기위해 노력해요”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상담 장면에서 아이들과 소통하다보면, ‘엄마는 나의 마음을 이해해줘요, 엄마는 내 마음을 알아줘요. 엄마랑은 얘기가 통해요. 엄마랑 같이 얘기하는 것이 좋아요’라고 표현할 만큼의 효과적인 공감을 제공하는 부모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는 공감, 반영적 경청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이입장에서 공감받았다고 느낄 수 있게 하려면 부모에게는 어떤 마음이 필요할까?
오늘은 <수용해주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밥 먹기전에 과자먹으면 안된다고 해서 화가 났구나~”, “파자마파티 못하니까 속상해~” 라는 언어적인 표현만으로 아이들은 공감 받았다고 느끼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공감하는 이의 마음, 즉 수용해주는 마음이다. 언어 표현 자체는 “~해서 화가 났었구나, ~해서 실망했구나”라고 반영해주더라도 마음속으로는 ’에휴, 또 저러는구나. 우리 아이는 왜 이렇게 만족을 모를까? 역시 예민해’등의 생각을 한다면 아이는 더 심하게 짜증을 낼 수도 있다. 공감을 해준다고 했는데 아이가 더 심하게 짜증을 낸다면 혹 공감의 흉내만 낸 것은 아닌지, 혹은 무엇 때문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자녀의 모든 반응을 수용해줄 수는 없다. 사회적 존재로 살기위해서는 감정을 조절하고 적절히 표현하는 것을 배워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가 수용에 대해 말하는 부분은 자녀의 감정과 욕구의 측면이다. 감정과 욕구는 우리 안에서 일차적으로 자연스럽게 경험되어지는 부분이므로 그 자체로는 수용받기에 마땅하다. 감정과 욕구는 행동과 달리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나이가 어릴수록, 감정의 분화가 덜 되어있을수록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표현/표출함에 있어 세련되지 못할 수 있다. 아이는 화가 난다고 짜증을 내고 부모에게 무례하게 반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부모는 눈에 드러나지않는 아이의 감정과 욕구보다 겉으로 드러난 표현방식 자체에 반응하기가 쉽다. 공감을 해줘야지라고 결심했어도 그 순간에는 “아무리 화가 나도 엄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라고 반응하기가 쉬운 것이다. 아이의 표현방식이면의 감정과 욕구에 귀기울이는 연습을 하지 못하면 아이의 표현방식자체에 반응하다가 끝이 안 좋게 끝날 가능성이 높다.
사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감정과 욕구에도 잘 귀기울여주지 못한다. 자신이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지만 정말 화가 나서 화를 내는 것인지, 불안과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서, 또는 억눌렀던 좌절감과 우울감이 화로 표출되는 것인지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어떤 부모는 인식은 하지만 자신의 감정과 정서들을 수용해주지 못할 수도 있다. 부모가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과 정서를 수용해주지 못한다면, 자녀의 부정적인 감정과 정서를 수용해줄 수 없다. 자녀에 대해 “you're ok'"를 해주기위해서는 부모자신의 마음속에 ”i'm ok"가 있어야한다. 만약 자녀에 대해 못마땅한 마음, 염려되는 마음이 항상 있어서 ‘괜찮아’라고 충분히 수용해주지 못한다면 부모 자신에 대해서도 같은 마음일 수 있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수용, 'I'm ok'가 되지 않는다면 결코 자녀에 대한 수용, ‘You're ok'가 온전히 이루어질 수 없음을 기억해야한다.
그래서 공감, 수용해주는 마음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모교육을 몇차례 듣고 온다고 해서 책과 동영상을 몇차례 본다고 해서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자신의 성장과정 안에서 이러한 수용과 공감을 받아왔던 사람이라면 예외겠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했던 부모님 세대로부터 이러한 공감과 수용을 받으며 자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수용해주는 마음으로 공감을 해주려면 이를 위한 실질적인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다. 첫째는, 부모가 부모자신의 감정에 귀를 기울이는 연습, 그리고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인정/수용해주는 연습(스스로에게 'I'm ok'라고 말해주는 연습)이 수반되어야한다. 둘째는, 아이의 미숙하고 부적응적인 표현방식 자체에 반응하기보다 그 이면의 감정과 욕구에 귀기울이고 수용해주는 연습(자녀에게 'you're ok'라고 말해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러한 연습과 노력들이 계속된다면 “엄마, 나는 엄마랑 얘기하는 것이 좋아. 엄마는 내 마음을 알아주니까. 난 엄마랑 얘기하면 마음이 편안해져”라는 고백을 듣게 되거나 아이를 양육하고 함께함이 더 행복하고 수월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