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컴패션과 함께하는 『흔들리는 부모 마음잡기!』 코너에 발달심리전문가 이하원 교수입니다. 지난 <2편>에서는 아이의 언어 지연에 대해 전문기관 내원 기준을 다루었습니다. 오늘은 자녀에게 훈육하면 여지없이 죄책감이 밀려오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 부모님들을 위해 훈육의 의미를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부모님들은 훈육이라고 하면 무섭게 아이를 야단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이를 한 번 울려서라도 엄마, 아빠가 만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고 이후에도 자녀가 부모에게 복종하도록 하는 것이 훈육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훈육이 아닙니다. 그리고 무섭게 혼을 내서 자녀가 부모의 말을 들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훈육의 결과가 아니라 두렵기 때문에 그 상황을 피해보고자 하는 일시적 행동일 뿐입니다. 연령이 어릴 때는 이런 방법의 훈육이 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령이 높아질수록 아이들은 부모와의 관계를 철회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훈육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할까요?먼저, 훈육이란 간단히 말하면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덕으로써 사람을 인도하여 가르치고 기른다(네이버 사전)라고 되어 있습니다. 본 정의에 따르면,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훈육은 덕이 된 태도로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윽박지르거나 화내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는 부모의 불편한 감정을 제거하고 자녀에게 옳은 것을 알려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톤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낮추어서 ‘안 돼’라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씀드리면 자녀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부모님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원래 말을 한 번에 듣지 않습니다. 한 번에 바로 ‘네’ 하는 아이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 번 반복해서 화내지 않고 알려 주는 것이 훈육입니다.
둘째, 무엇을 가르칠까요? 자녀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질서 혹은 규칙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자녀가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하고 싶지만 하면 안 되는 것은 멈추고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하는 것은 하도록』 알려주는 것입니다. 자녀가 화가 나고 억울해서 친구를 때리고 싶다 하더라도 사람에게 신체적 가격을 하는 것은 사회질서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체 공격이 아닌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방식 즉, 대화로 화를 풀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을 제거하고 알려주는 방법이 잘 안됩니다. 왜 그럴까요? 세 가지 이유를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훈육에 대한 왜곡된 개념을 갖고 있을 때
부모의 자존감이 낮을 때
피곤하거나 머릿속이 복잡할 때
첫째, 부모의 왜곡된 훈육 개념은 자녀에게 그릇된 훈육을 하게 합니다. 어떤 부모님은 “저도 맞고 컸는데 이렇게 잘 성장했습니다” 혹은 “애들은 특히, 남자애들은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립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이는 왜곡된 훈육 개념입니다. 이런 개념을 갖고 계신 부모님들은 개념이 잘못 정립되어 있기 때문에 바른 훈육이 될 수 없습니다. 자녀는 훈육을 통해 배워지는 것은 없으면서 부모와 관계만 나빠집니다. 그런데 이런 부모님들 중 죄책감이 많은 부모님들이 계십니다. 죄책감이 많은 부모님은 자녀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자녀의 눈치를 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무섭게 야단친 후, 갑자기 지나친 비위를 맞추어서 정작 필요할 때 “안 돼”라는 말을 자녀에게 하지 못하십니다. 결국, 자녀는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부적응적인 성인으로 성장합니다.
둘째, 부모가 낮은 자존감을 갖고 있을 때입니다. 자존감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평가인데 자존감이 낮은 부모님들은 자녀가 내 말을 즉시 듣지 않는 것을 자신을 무시했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재미 위주로 일상을 살아갑니다. 즉, 재미있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지요. 설사 부모의 말이 들린다 할지라도 지금 하고 있는 재미있는 일을 멈추고 부모의 말에 귀를 기울여서 행동으로 옮기는 주의 전환은 쉽지 않습니다. 사실, 혼날 아이는 없습니다. 혼날 일을 했다고 해석하는 부모가 있는 것이지요. 매를 부르는 아이는 없습니다. 매를 맞을 일이라고 해석하는 부모가 있는 것입니다. 이 말에 동의가 쉽지 않으시다면 아이의 행동에 부모의 해석이 다른 경우를 생각해 보시면 이해가 수월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빠는 매를 대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을 수 있지요. 즉, 자녀 행동에 대한 부모의 훈육 태도는 자녀가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해석에 준한 것입니다.
셋째, 부모가 신체적으로 피곤하거나 정신적으로 피로할 때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훈육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훈육의 왜곡된 개념이었던 첫 번째 원인은 오늘 설명해 드린 대로 훈육이 부정적 감정을 빼고 자녀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관을 재정립해서 일상에서 적용하시려는 의지가 필요하겠지요. 그리고 그런 의지가 1편에서 말씀드린 대로 자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낮은 자존감 문제는 사실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오랜 시간 굳어진 자아상으로서 대체로 부모의 원 가족(original family) 과의 관계 문제가 점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연세 많으신 내 부모님을 용서하고 다시 관계를 친밀하게 맺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당신들께서 평생 살아오신 행동과 사고의 패턴을 바꾸기 어렵지요.
그래서 내 부모를 한 남자와 여자의 인생으로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의 전환 정도를 일단은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이 용서의 시작이 될 수 있고 놀랍게도 그 결과는 부모로서 내가 자녀를 대하는 양육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또한 이웃이나 자녀 친구의 부모들 중에 부모-자녀 관계가 원만한 분들이 계시다면 이들이 어떻게 훈육하는지 관찰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원인인 컨디션의 문제는 부모의 머리에 사회생활, 부부관계, 시가, 처가 등의 여러 방들이 있지요. 이 방들이 들쑥날쑥하면 자녀를 대할 때 부정적인 감정을 제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녀를 대할 때, 이 방들의 스위치를 거실 불을 끄듯이 꺼두어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른이고 우리가 성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조절해야 하는 것입니다. 유아동기 자녀가 우리의 복잡한 삶을 이해하기는 어렵겠지요.
마지막으로 그동안 자녀에게 했던 훈육 중 혹시 후회스러운 사건들이 지금 떠올라서 마음이 울적하신 분이 계시다면 괜찮습니다. 내 훈육의 태도를 반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부모이며 무엇보다 몇 번 아이에게 불편감을 주었다고 해서 그 아이의 인생이 잘 못 되지 않습니다. 물론 지속적으로 부모의 감정이 조절되지 못한 채 훈육을 하고 있다면 안 되겠지요.
그러나 인간에게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바닥에 튕기면 바닥을 치고 천장까지 높이 튀어 오르는 짬뽕공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회복탄력성이란 이런 공과 같은 것입니다. 인간이 바닥을 쳐도 또 튀어 오를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는 것이죠. 아이들은 어리기 때문에 상처를 잘 받기도 하지만 또한 잘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부모를 무척 좋아합니다. 과거의 후회되는 훈육은 지나가게 하고 그 사건에 이제 그만 묶여 계시고 오늘부터 부모님들도 새날로 다시 시작해 보시길 바랍니다.